에티오피아의 마지막 황제였던 하일레 셀라시에 I세가 영원한 안식처를 찾다. |
(Ethiopia’s last king Haile Selassie I laid to rest.) 아프리카의 전형적인 건기로 들어선 쌀쌀한 아침부터 무더운 한낮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파가 지난 11월 5일 주일 아침에 아디스 아바바의 십자가 광장에 모였다. 이날은 지난 25년동안 베일에 싸였던 이 민족의 마지막 황제였던 하일레 셀라시에의 뼈만 앙상하게 남은 작은 관이 광장으로 옮겨져 수많은 사람들의 애도속에 영원한 안식처인 트리니티 정교회 지하에 안장되는 엄숙한 행사를 정교회와 장례위원회 주관으로 마련되었다. 이날은 하일레 셀라시에를 위한 아주 특별한 의식이 집례되었다. 정교회의 주교들과 감독들이 정교회 특유의 울굿불굿한 가운을 입고 은으로 만든 대형 십자가를 앞세우고 수도 아디스 아바바의 한 마소레움에 묻혀있던 마직막 황제의 시신을 담은 관이 옮겨졌다. 마지막 황제의 시신은 한 장소에 8년동안이나 방치되었다. 에티오피아의 국기인 빨간 노랑 파랑색의 천이 관을 싼 하일레 셀라시에의 영구차가 거리를 따라 이동할때에 거리의 수많은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기도하며 흐느끼며 애도하였다. 영구차가 진행하는 앞에는 전통으로 내려오는 무예들이 창과 칼을 든 군인들이 마지막 황제를 존경하기위해 앞서 행진하였다. 그 옆에는 하일레 셀라시에의 황제의 상징인 용과 유다의 사자 깃발이 펄럭이었다.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지난 1974년 공산주의를 등에 업고 쿠테타로 하야 하기까지 44년동안 집권했다.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라스타화리안들로부터 신으로 숭배되기도했다. 그러나 그는 1974년에 막스주의를 추종하던 군부의 한장교로부터 디듬해인 1975년에 살해되었다. 권력의 심장부에 있던 그가 어느날 하루 아침에 그의 시신은 화장실 근처인 콘크리트 바닥에 묻혔다. 이번 행사는 황제의 가족들을 중심으로 정교회와 연합으로 준비되었는데 대부분의 가족들은 그해 1년여동안 감옥에 갇혀 있다가 해외로 추방되었다. 그의 시신은 황제의 아내인 메넨의 묘지 옆에 안장하기로했다. 멜레니크황제의 마소레음의 밖에서 그의 시신이 출발하기전 정교회 사제는 집례중에 “당신은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고 무덤조차 알수 없는 곳에 묻혔을지라도 당신이 살아온 업적은 아프리카와 이 민족을 위한 위대한 지도자 였습니다”.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솔로몬왕과 시바여왕의 계보를 따라 지난 2,000동안 225대째 계보를 따라 황제가 되었다.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아프리카의 근대화와 현대교육에 앞장섰고 보다나은 제도와 빈곤퇴치에 진력하기도 했다.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성경에서 말하듯이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인것처럼 마지막 황제인 하일레 셀라시에 I세가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수장이라고 믿어왔다. 그 가 죽자 그동안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의 교회와 유기적인 관계를 가져왔는데 이를 계기로 에티오피아 정교회에 자유를 가져다 주었다. 에티오피아 정교회가 지금까지 이 나라의 3/1의 땅을 소유했었다. 그러나 공산주의가 들어왔을때에는 힘을 잃었고 모든 정교회 재산과 건물을 빼앗기고 사제들을 죽이고 감옥에 투옥하기도했다. 쿠테타 군부 지도자인 멩기스투는 막스 레닌주의를 교육하기에 바뻣고 그들은 시온이즘과 싸운다는 명목으로 개신교교회들을 압수하고 신자들을 죽이기도하며 투옥하기도 했다. 이때에 동기 유발을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을 죽였고 교육 받은 인테리들도 죽였다. 이때에는 지금까지 젊은이들을 해외로 나가 공부하지 못하게하던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의 정책에 반해 멩기스트 정부는 수천명의 젊은이들을 러시아와 쿠바, 유고, 체코슬로바키아등의 공산주의 국가로 유학을 보내고 장학금을 얻을수 있는데로 유학가는것을 장려했다. 그러나 경제는 환율을 17년동안이나 유지해보았지만 파탄되었다. 하일레 세라시에 황제 제위시는 지방에서 올라오는 젊은이들에게 쉽게 대학에 들어갈수 있게했고 백성들이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할수 있게했고 보다 다양한 직업을가지고 일하게 했다. 또한 이때는 해안의 영토를 가지고 있어 해상교역과 해군등을 소유했고 국제적인 이미지에도 많은 관심을 쏟기도했다. 마지막 황제의 시신을 재안장하는 이 시점에 에티오피아 현정부는 그를 백성들을 억압했다고 비난했다. 수 많은 군중속에 일부는 그가 너무 오래동안 권력을 소유했었고 실수도 했었지만 그의 목표를 이룰려고하는 점잔은 신사였다고 평가하기도했다.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 재직시 황제 시위대였던 87세의 화이사는 말하기를 “이스라엘 솔로몬왕에 이어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지도자였고 또한 그는 그의 민족을 사랑했던 지도자였다”고 말했다. 리타 말리라는 여인이 이 행사에 참여했는데 밥 말리의 아내인데 에티오피아에 사는 라스타화리안들이 믿기를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죽지 않았고 그 시신은 또 다른 사람의 시신이라고 주장했다. 주로 해외의 쿠바에서 사는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주해와 하일레 세라시에 황제를 신으로 섬기는 사람들이다. 지금은 에티오피아에서 살고 있는 라스타화리안인 라스 롬봐가 말하기를 그는 결코죽지 않고 결코 죽지도 않고 그의 몸은 그에게 속해 있지 않음을 모든사람들이 안다고 주장했다. 원래 라스타화리라는 말은 1930년에 하일레 셀라시에가 황제로 즉위하기까지 사용했던 라스 타화리라는 황제의 옛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왕중의 왕이요, 승리하는 유다민족의 사자로 숭배되었고 라스타화리안들이 믿었던 그의 신성을 그의 가족들은 결코 그렇게 불려지기를 원했던 적은 없었다고 말한다. 에티오피아는 지난 20여년동안 2번의 크나큰 가뭄과 기아로 어려움에 있었고 지난 2년동안 에리트리아와의 전쟁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또 지금도 가뭄으로 인해 해외로부터 수많은 원조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 에티오피아는 영적인 추수기이다. 가는곳마다 교회라는 이름만 붙여도 수 많은 사람들이 몰려온다. 교회건물은 없지만 앉을자리는 고사하고 햇볕을 피할 나무 그늘만 있어도 성경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다. 이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슬림과 정교회이지만 곳곳마다 개신교회가 들어서고 있고 심지어 옷을 입지 않고 사는 부족에도 그리스도인들이 늘어나 스스로 교회를 세워나가고 있다. 박종국선교사/에티오피아-아프리카 |